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미스트」는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됐다.
8장은 매체 간 각색을 다루고 있어서 한 번쯤은 보고 싶었던 작품인 「미스트」를 책과 영화로 보았다. 황금가지에서 출판된 스티븐 킹의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의 상권에 「미스트」가 실렸다. 「미스트」는 1980년에 최초로 공포 소설 앤솔로지 『다크 포시즈』에서 공개한 작품으로 1985년에 스티븐 킹의 앞에서 언급한 단편집에 실렸다. 동명의 영화는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 토마스 제인과 마샤 게이하든 주연으로 2008년에 개봉했다.
원작 소설과 영화
우선 이 중편소설의 영화 각색은 변형하기(영화 이론가 더들리 앤드루의 분류)에 해당한다.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여 전면적인 변형을 시도했다. 원작과 스토리 상의 변화가 있는데 큰 변화는 아니다. 원작의 구성적 사건은 영화라는 매체의 시간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부 실으려고 노력한 것이 보이고 그 구성적 사건 주변의 보충적 사건과 실체가 원작과 미묘하게 다르다. (드라마 버전도 있는데 그 작품은 차용하기에 해당한다. 호숫가의 집과 불가사의한 안개와 거기에서 벌어지는 재앙과 그 재앙이 애로우헤드 프로젝트와 관련되어 있을 수 있다는 설정 또는 아이디어 정도만 가져왔다. 각색의 나머지 분류인 교차하기는 원작과 최대한 가깝게 각색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드레이튼의 동선은 결말(그 결말로 인해서 이 영화는 스티븐 킹의 숨결이 담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이러니하면서도 통쾌하지 않고 음울하게 종결되는 결말은 스티븐 킹의 것이 아니다. 원작에서는 적어도 드레이튼과 그와 함께 용기를 내서 마트에서 탈출한 이들은 목숨을 구하기는 했다. 그들의 미래는 암담하기는 하지만 열린 종결로 끝난다.)을 제외하고는 원작과 영화에서 전부 같다. 따라서 원작을 먼저 읽고 이 영화를 보면 이야기를 예측하며 볼 수 있다.
웨인과 셀리
영화에는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웨인이라는 군인이 등장한다. 원작에서는 두 명의 군인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불가사의한 재앙이 일으킬 미래를 비관하여 둘 다 자기 자신의 삶을 버리는 선택을 한다. 영화에서도 그 두 명의 군인의 이야기는 원작과 같다. 영화에서 추가로 등장한 웨인이라는 인물로 인해서 영화만의 구성적 사건이 있지는 않다.
웨인은 원작의 드레이튼을 대신해서 재앙이 일어난 날 밤에 불륜이 아닌 그의 동창과 사랑을 한다. 영화라는 매체는 소설과 연극에 비해서 매우 많은 자본이 들어간다. 그리고 소설보다 대중적인 것이 영화이고 관객들의 입김이 세게 작용한다. 따라서 드레이튼의 불륜을 영화에 그대로 가져오고 관객들을 설득하려면 드레이튼의 감정의 흐름과 죄책감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작업이 들어가면 이 영화의 장르가 더는 강한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는 호러(공포)가 아니게 된다.
불가사의한 재앙 속에서 벌어지는 두 남녀 간의 성적인 이끌림이면서도 재앙의 깊이를 더하는 보충적 사건을 지워내지 않으면서 영화의 대중성을 위해 각색한 것이다. 따라서 영화에서는 웨인이라는 인물이 필요했고 그의 상대로서 드레이튼의 아만다 덤프라이스가 아닌 마트 계산원 셀리가 (원작에서는 셀리의 생사를 알 수 없으나 마트에서 사람들이 대규모로 탈출할 때 그 물결에 따라갔을 것으로 그려진다) 마트에서의 첫날 밤까지 살아있어야 했다.
그리고 웨인과 셀리는 이 보충적 사건만이 아니라 다른 보충적 사건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웨인은 재앙의 근원지인 군대(원작에서는 재앙이 정부와 군대의 애로우헤드 프로젝트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다양한 추측들이 있지만 종결에서도 밝혀지지 않는다)에 속한 군인이라는 이유로 광신도인 커모디가 일으킨 분노한 군중에게 죽는다. 웨인은 속죄의 제물로 활용된 것이다. 원작에서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커모디를 따르는 군중이 앞으로 커모디를 대적한 이들을 차례로 제물로 삼을 것이라는 강한 암시가 있지만 속죄의 제물로써 직접적으로 죽은 인물은 없다.
시청각적 재연
셀리는 야수의 침에 물려서 죽는데 그 모습이 매우 끔찍하다. 침에 찔린 목 부위와 얼굴 하부가 피멍이 들며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웨인은 그녀의 죽어가는 모습을 울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청각적 재연은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매우 강력한 힘으로써 이 영화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영화의 초점자는 카메라의 눈으로써 몽타주 기법과 편집 기술로 인해 영화의 시간과 관객의 눈이자 관점의 이동이 매우 자유롭다. 원작보다 영화에서 야수와의 전투 장면의 비중이 높다. 심지어 생존자와 야수 간의 전투가 소규모 전쟁처럼 전달된다. 드레이튼이 야수를 처치하는 최초의 장면도 야수와 처음으로 마주하는 사건에서 발생한다. 하역장에서 드레이튼이 소방 도끼로 야수의 촉수를 강하게 내리친다. 원작에서는 셔터(철문)가 내려가면서 촉수가 잘린다. 대신 영화에서는 인물 내면의 감정의 흐름의 전달과 그것에 쏟는 시간은 양적으로 부족하다. 영화에서는 간접화법 혹은 내적 독백이 전무하거나 매우 비중이 작다.
등장인물
등장인물의 모습에 대한 묘사 또한 원작과 다르다. 원작에서는 언어를 통해 등장인물의 모습을 독자가 직접 모든 것을 상상한다. 따라서 등장인물에 대한 모습은 독자마다 가지각색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을 보여준다. 영화의 제작진이 관객의 상상력을 대신해서 상상 속 등장인물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현이 원작과는 유사하면서도 분명히 다를 수 있는데 그것은 감독의 원작에 대한 해석의 결과이다. 원작에서 커모디의 모습은 샛노란 바지 정장 차림에 작은 샘소나이트 가방만 한 지갑을 겨드랑이에 낀 모습으로 다녔다. 영화에서 커모디는 단정한 가디건과 드레스 차림으로 성서를 들고 다닌다. 이러한 연출로 인해서 영화의 커모디는 기독교인이지만 어딘가 이상하게 광신적인 기독교인이자 선지자로 묘사(원작과 영화에서 모두 커모디는 악역이다)된다. 원작의 커모디는 성서를 단 한 차례 언급한다. 그녀의 말에 심판과 속죄와 제물과 같은 테마로 구약적 뉘앙스가 있을 뿐이지 기독교인이라고 영화처럼 단정하기는 어렵다.
상연 시간과 속도
원작은 중편소설로 중간에 끊어가면서 읽을 수 있었다. 중편이 아닌 장편소설과 연재소설로 넘어가면 하루 만에 읽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소설은 읽는 속도를 독자가 조절할 수 있다. 영화는 소설에 비해서 서사담화의 길이가 정형화되어 있는데 상영 시간은 대부분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고 길어도 2시간 30분이다. 극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보는 것을 기본 모형(영화는 소설이나 연극에 비해 자본 집약적인 매체이다)으로 영화는 제작된다.
서사담화의 속도를 늦추는 것에 관한 논의인 지연(서스펜스의 전개에 핵심적인 역할)에 있어서도 영화는 소설에 비해서 지연의 허용 범위가 제한적이다. 따라서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면서 축약과 압축이 발생한다. 「미스트」원작에서는 소설의 초반부에서 호숫가의 드레이튼 가족을 중심으로 사건들이 발생하고 앞으로 등장할 커모디라는 인물에 대한 언급과 회상 등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큰 폭풍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드레이튼의 집과 함께 온 마을 피해를 보았다는 것 정도를 약 6분으로 압축하고 등장인물들이 다음 장소(마트)로 이동한다.
매체 간 각색 장을 읽으면서 직접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감상문을 작성하는 것이 글의 이해에 있어서 더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게는 익숙한 소설가인 스티븐 킹의 빠르게 읽히는 중편소설을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감상문을 작성에 시간이 걸렸다. 소설과 영화를 보는 프레임인 『서사학 강의』를 영화와 소설과 함께 의도적으로 보니 이론서의 개념과 작품이 새롭게 이해되었고 그것을 내 언어로 만드는 작업은 저자(H.포터 애벗)의 말대로 일종의 각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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