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서사담화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속으로 중개(구성)되는 주관적인 것이라면 스토리 간의 구별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서사가 사건의 재현이라면 서사의 폭이 대단히 넓어지는 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로서 서사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우선은 스토리 간의 구별은 구성적 사건과 보충적 사건으로 사건을 나누어서 보면 가능하다.
구성적 사건이란 스토리 전체를 앞으로 진행하게 하는 사건이다. 그러하기에 스토리 차원에서 구성적 사건은 필수적이다. 스토리의 줄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보충적 사건은 스토리를 앞으로 진행하지는 않지만, 촉매 또는 위성의 역할을 한다. 서사의 의미와 감동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구성적 사건과 보충적 사건 사이의 위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파우스트 이야기
파우스트는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얻기 위해 악마와 계약한 한 남자에 대한 스토리로 이것과 관련된 연속적인 사건은 구성적 사건이다. 이 이야기 전개 이외의 사건은 보충적 사건이다.
고대 독일의 파우스트 설화
크리스토퍼 말로의 희곡 파우스투스 박사 (1604년 판본과 1616년 판본)
괴테의 2막극 파우스트 (1808년과 1831년)
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투스 박사 (1947년)
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투스 박사에서의 악마는 파우스트 설화와 말로와 괴테의 파우스트 박사와는 달리 주술적 의식으로 불러내거나 모습을 스스로 나타내지 않는다.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인 레버퀸에게 나타난 악마는 환각적 존재이다. 레버퀸은 금기를 깨뜨리는 유혹과 성적 충동을 이기지 못해 매음굴에 간다. 그곳을 다녀온 후로 매독 증세를 보인다.
매독으로 인한 정신착란과 그의 예술적이면서(초인적인 창조성을 얻으려고) 도덕적인(타락에 대한 죄책감) 내적 갈등으로 인해 나타난 것이 악마이다.
그럼에도 앞의 네 개의 작품은 모두 파우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또한 파우스트 이야기라는 구성적 사건의 뼈대 구조는 동일하나 서로 다르게 변주되어서 전달하는 의미와 감동은 다르다.
서사성의 높고 낮음
"아침에 민주가 일어났다."
이 문장은 사건의 재현으로 서사이지만 서사성이 낮다. 따라서 광의적인 의미의 서사의 개념을 채용하지 않는다면 서사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문장이다.
서사성이 높아 서사라고 일반적으로 불리는 장르로는 소설과 시와 연극과 영화 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장의 길이가 길어진다고 해서 서사성이 높아진다고는 볼 수 없다. 예를 들어서 앞의 서사에 다른 서사, 한 문장을 더한다고 해보자.
"아침에 민주가 일어났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핸드폰의 메시지 수신함을 확인했다."
사건을 하나 더 추가한다고 해서 서사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추가된 사건에 한 단어만 더 더해보자.
"아침에 민주가 일어났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서둘러 핸드폰의 메시지 수신함을 확인했다."
서둘러라는 단어 하나를 더 더하니 서사 지각이 작동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서사성이 강화된 것이다. 왜 민주는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의 메시지를 확인해야 했을까?
서사성이란 "서사를 만드는 특성들의 집합"이고 이 특성들의 작용에 따라 서사성의 높고 낮음이 결정된다.
작품 분석:「달에서 떨어진 사람들」
여기까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카탈루냐 출신의 작가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의 단편소설「달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읽어본다.
이 작품의 서사세계는 현실과 환상이 교차한다.
현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추운 밤에 인칭 화자가 아버지의 지시로 양동이를 들고 젖소의 우유를 짜러 축사로 가는데 거기에서 달에서 온 사람이 추위에 떨며 등장한다. 아버지는 엽총으로 달에서 온 사람을 쫓아낸다. 이는 구성적 사건에 해당한다.
이어지는 구성적 사건으로는 달에서 온 그 사람과 재회한다. 그는 들판의 올리브 열매를 따서 먹고 있었다. 화자가 말로 제지하자 그는 배고픔에 아무도 따가지 않은 올리브 열매를 따서 먹고 있었다고 한다.
서로의 언어를 모르지만 대화가 몸짓으로 됐다. 그러자 화자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제지하는 것을 그만둔다.
달에서 온 사람들이 빈번하게 마을에 등장하니 화자의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노동력을 헐값에 사들인다.
그들은 일용직 노동자보다 두 배로 더 일을 하면서 임금은 절반이다. 축사에서 잠을 잔다.
그런데 달에서 온 사람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유사해진다. 피부가 밝아지면서 검은 얼룩도 사라진다. 이마의 기린을 닮은 두 개의 뿔도 빠진다. 게다가 말도 이제는 할 수 있게 됐다.
화자 또한 성장하여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됐다. 달에서 온 사람들을 아버지처럼 이방인이고 가축과 같이 보는 것이 아니라 집 주변에서 살고 있는 그들에게 뿔 두 개를 주워서 가져다주며 뿔이 빠지는 것이 아프지 않으냐고 묻는다.
화자는 마을을 향해 가는 길에 축사에서 추위에 떨었고, 올리브 열매를 주워 먹었던 달에서 온 사람과 재회한다. 화자가 달에서 온 그때 그 사람이 맞느냐고 묻자, 그는 부인하지는 않고 주위를 살피며 자신은 그저 "난 수도 수리공이야."라고 말한다.
마지막 구성적 사건은 화자가 자신의 마지막 덧니를 전통에 따라서 도자기함에 보관하려는데 도자기함의 뒤에서 달에서 온 사람의 것과 아주 흡사한 뿔 네 개를 발견한다. 이어서 할머니는 화자의 가족 또한 달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을 한다.
이처럼 구성적 사건으로만 구성해서 단편소설의 뼈대 구조를 보면 달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환상적 요소를 왜 사용했는지 그리고 그러한 요소를 사용함으로써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지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를 더 간략하게 줄일 수도 있다.
"이방인이 우리 마을에 왔다. 그들을 값싼 인력으로 노동력을 착취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 또한 그들을 닮은 이방인이었다."
보충적 사건으로는 화자의 아버지가 일으키는 사건들이다. 아버지는 달에서 온 사람들을 적대시하고, 집안에서 독재자처럼 군림하며, 돈이 되자 그들을 착취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할머니의 할머니라는 매우 오래 산 할머니가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이라고 말하는 사건들. 식물과 같은 인간인 할머니의 기억력은 전쟁이라는 대화의 주제에서 투석기를 언급할 정도로 오래됐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화자와 함께 미사를 다니고 그저 집안의 사건을 지켜보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 밖에도 작품의 처음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젖소인 암소의 울음소리까지.
보충적 사건은 구성적 사건처럼 이야기의 진행에는 필수가 아니지만 이야기의 의미를 다채롭게 하고 감동을 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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