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수사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한다. 서사가 발생하는 장소는 우리의 마음속이니 호소력이 있는 이야기를 듣고 삶이 실제로 달라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나는 찬양을 듣는 것을 참 좋아한다. 매일 듣다 보니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도 생겼다. IT 개발자로 일하며 출퇴근길에 들었던 찬양이 언제나 나의 마음을 채워주었다. 회사 일과는 별개로 인생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지는 시절이기도 했었다.
"넌 자격 없다고 내 영혼에 외칠 때 주의 보혈이 의롭다 하시네."
"다 의미 없다고 내 삶을 외면할 때 주의 자녀라 나를 부르시네."
"주의 말씀으로 나를 채우소서."
적어도 하루 2시간을 찬양을 들었고 그것이 일으키는 힘에 의존하며 살아갔으니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서사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서사의 수사학이자 힘으로서 효과는 인과관계와 표준화하기가 있다.
인과관계
인과관계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믿음은 고전적인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대학교 문학 강의 시간에 처음 들었을 때 신선한 이해로 다가왔다. 이별이라는 사건을 겪은 주인공이 원인이 되는 사건을 찾으려고 애를 쓰지만 사건들 속에서는 찾을 수 없었음을 그려낸 작품이었다.
그러나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그리고 타당한 가정이기도 하다.
삶에서 그 예시는 너무나도 많다.
오늘날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우리의 행위에 반응해서 결과를 즉시 보여준다. 또 다른 예시로 "사과의 껍질을 과도로 깎으면 과육이 드러난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이러한 인과성을 우리는 매일 경험하고 있다.
"나라는 존재와 세계의 기원은 무엇인가."와 같은 의문처럼 알고자 하는 욕망은 인류 공통의 욕망이라고 한다. 알고자 하는 대상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는 인간의 욕망은 동일하다. 또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인과성에 속으면서도 그것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찬양을 듣거나 성경을 읽거나 예배에 가면 삶을 누르는 문제들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하고 내 나름대로 답안을 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과관계라는 수사학의 효과는 그 힘이 유용하고 매력적이기에 고전적인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인과관계의 고전적인 오류란 모든 사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에는 원인이 있으나 원인을 파악하기란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어려운 사건도 있음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또한 사건에 대한 시각과 해석은 시공간에 따라 변모하기도 한다. 원인이라고 여겼던 사건이 원인이 아니거나 원인의 조각이었거나 결과이자 원인이 되는 사건이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고전적인 오류의 설계된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A라는 행위를 하면 B라는 결과를 얻는다는 본심을 숨긴 혹자의 거짓말에 속는 경우도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이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한 사람의 프로필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프로필은 유용한 도구이지만 사건이나 결과를 선택하기 또한 구조라는 점을 명심한다면 프로필로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 수는 없다.
표준화하기
연속하는 사건들의 모음에 서사적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이 표준화하기이다. 서사의 표준화는 무지한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욕망을 해소한다.
지나간 삶의 사건들이 연결되지 않은 공간의 점들로만 남아 있다면 오늘의 나에 대한 나 자신의 해석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는 내가 아닌 내가 보는 다른 사람에 대한 해석의 시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본다는 사건과 나 또는 타인의 행위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것은 작가와 같은 존재가 되어 사건이라는 점들을 이야기로 잇는 것이다.
서사의 표준화라는 건 매우 강력한 힘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어조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대상이 되는 사람의 미래에 대한 부정성을 지닌 말이다. 이는 표준화하기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사람마다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해 주는 이야기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다 내 이야기의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매우 아픈 사건을 겪기도 한다. "그 사람이 사고를 겪은 이후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크게 달라졌어."라는 말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기적적으로 사람이 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감동적인 일화를 바라보고 힘 또한 얻는다.
그렇다면 서사적 효과인 인과관계와 표준화하기를 일으키는 서사적 장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마스터플롯이다.
마스터플롯
마스터플롯은 이야기의 원형이라고도 한다.
나는 마스터플롯보다 원형을 대학교에서 먼저 배웠다. 비교신화학자인 조지프 캠벨의 저서를 접했고 그리스 비극이나 서양 근대 희곡과 현대소설도 비교하면서 읽었다.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변주되며 시대를 이어오고 있다는 것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매우 놀라운 경험이었다.
원형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기는 하지만 원형은 융 심리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낡은 용어라고 한다. 또한 마스터플롯을 서사학에서 원형이라고 부르기도 했었지만 앞서 언급한 이유로 저자는 마스터플롯을 원형보다 선호한다고 한다.
마스터플롯이란 무엇일까?
사회초년생인 A가 있다고 해보자. A는 집에서 회사까지 거리가 멀어서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했다. 상사보다 늦게 퇴근하는 것이 신입사원의 모범이라 생각해 밤늦게 집에 도착하고는 했다. A는 부지런히 일했다. 꼬박꼬박 받는 월급의 대부분은 적금과 주택청약통장에 부었다.
이러한 A의 이야기에는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유형이 있다. 이 유형의 사람이 직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즐겁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며 깨지기도 하는 사건들을 경험하며 인격적으로 성장해 나간다. 결국에는 꿈에 그리던 아파트 청약까지 당첨된다. 이는 마스터플롯이다. 유형 또는 마스터플롯이 전형적으로 읽히면 이를 스트레오타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위대한 작품은 원형이 되는 마스터타입에 역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또한 A의 마스터플롯은 고정적이지 않다. A를 다른 유형과 마스터플롯으로의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동기와 상사와 경영진과 대표와 외부인의 시선과 입장에서 A를 보고 판단하는 시선은 다를 수 있다.
마스터플롯의 경합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곳은 법원이다.
원고와 피고가 경험한 실제의 사건과 심지어 제시한 증거가 같더라도 그것을 해석해서 그려내는 양측의 마스터플롯과 인물에 대한 유형화는 다르게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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