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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포터 애벗의 '서사학 강의' 독후감

서사의 서술자와 신뢰성

by 명현 에디터 2025. 1. 10.

서사의 서술자는 누구일까?

 

서술자를 작가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소설의 외부에서 존재하는 어떤 이(서술자)가 실체와 사건을 서술하는데 그건 작가라고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읽었다.

 

그러나 서술자는 작가가 아니다.

 

작가가 만들어 내고 그에게 영향을 받은 실체인 것은 분명하지만 서술자가 작가는 아니다. 서술자는 작가가 사용하는 서사 장치 중 하나(서사담화 형식의 요소)이다.

 

따라서 서술자를 작가와 혼동하면 그건 작가에 대한 오해를 일으키게 한다.

 

신뢰성이라는 큰 틀에서 서술자는 신뢰할 수 있는 서술자가 있고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가 있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작가가 의도해서 서술자를 선택한 것이다.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의 경우는 이를테면 완고하고 이상한 믿음을 가진 서술자가 등장한다고 해보자. 그 서술자가 서술하는 것은 모두 사실이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서술하는 서술자의 해석은 보편적이지 않다. 따라서 거기에서 비롯되는 효과는 독자가 서술자에 대한 비판적인 해석으로 옮겨가게 된다.

 

또는 신뢰할 수 있는 서술자이면서도 철저히 실체와 사건에 거리를 상당히 유지한 채로 서술하는 서술자의 예시도 있다.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단어의 사용은 제한하면서 건조하게 스토리 세계의 바깥에서 서술하는 방식이다. 그러할 때 기대되는 효과로는 사건에서 표현되는 인물의 감정과 표현에 오히려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외에도 서사에는 실체들만큼이나 다양한 서술자들이 있다.

 

이러한 서술자에 대한 분석은 어떻게 할까?

 

서술자에게는 세 가지 속성이 있다. 목소리초점화거리가 그것이다.

 

서사의 서술자와 신뢰성

 

목소리

 

목소리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술자가 누구인가? 라는 물음과 관련되어 있다.

 

1인칭, 2인칭, 3인칭 서술자가 그것이다.

 

1인칭은 대부분 3인칭을 포함하고 있다. 분명 '내'가 말하고 있지만, 나라는 서술자가 다른 실체와 사건을 서술하는 방식은 3인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칭에서 재미있는 개념은 2인칭은 위장된 1인칭이기도 하다. '너'라고 하면서 서사가 전개되지만, '너'라고 하는 건 서술자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가져오면 이러하다. "당신이라는 호명은 메시지를 발신하는 나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마음속으로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을 최초로 듣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3인칭에서 기억해야 하는 점은 서술자는 다양할 수 있고 의인화된 서술이라는 점이다.

 

초점화

 

목소리는 서사 안에서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

 

스토리 세계의 외부에서 3인칭 목소리로 전개되다 그 목소리가 스토리 세계 내부의 실체의 목소리로 넘가서 서술하는 방식을 소설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다.

 

초점자가 3인칭 외부 서술자에서 스토리 세계의 실체로 넘어간 것이다. 이 역도 가능하다.

 

자유간접화법이라는 개념도 있다. 자유간접화법이란 3인칭 서술자의 목소리를 인물의 목소리라는 필터에 통과시켜서 간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실체의 내적 독백(간접화법보다는 직접화법이다.)과는 차이가 있는데 자유간접화법은 초점자가 바뀌어도 문법적으로 3인칭 서술을 유지한다. 이는 작가가 서술자의 서사적 목소리를 잠시 인물이 대신하도록 초점자를 넘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거리

 

서술자가 서술하는 방식이 실체와 사건에 밀접하게 다가가서 풍부한 감정을 서술에 실을 수도 있고 대상과는 철저히 거리를 두고 서술할 수도 있다.

 

헤밍웨이는 간결하면서도 건조한 문체로 유명한 작가인데 이는 서술자가 거리를 유지한 채로 실와 사건을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다.

 

보이스 오버

 

영화에서 목소리가 등장해서 실체나 사건을 서술하는 방식을 보이스 오버라고 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개념은 영화는 서사에 대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텍스트로 된 서사는 독자의 해석이 개입할 공간이 크지만, 그 공간을 영화나 연극에서는 연기자와 무대, CG 특수효과 등이 대신해서 직접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방식으로 대신한다.

 


 

"소설가는 상상으로 남겨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근사한 단편소설을 읽고 그것을 쓴 저자에게서 글을 배운 경험이 있는데 이미지로 상상했던 소설가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술자와 작가를 구분하지 못했던 내 잘못이 있다. 이러한 곁텍스트의 경험은 저자의 단편소설을 이해하는 것에도 영향을 주었다. 단편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자꾸만 저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어른거리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문학 작품에 대한 애정도가 높을수록 그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한 상상은 작가 소개글 정도로만 의지하고 있다. (작가가 준비한 낭독회나 사인회에서 거리를 두고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작가가 자신에 대해서 독자나 사회에 밝히고 싶은 것은 책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글 정도가 아닐까?

 

내가 실제로 경험한 작가들은 성실한 직업인이었다. 이들이 소속한 곳이 회사나 공공기관 같은 조직은 아니지만 원고의 마감이 공통으로 있고(그래야 생계를 유지하니까) 예술가로서 더 나은 글을 쓰고자 하는 고민과 노력을 관찰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작가가 노련하고 유머러스해도 글에 대한 애정이랄까. 그건 숨길 수 없었다. 이것은 자서전과 같은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아무리 저자가 노력해서 자신에 대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저자에 대해서 숨길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자서전이 아닌 작가와의 직접적인 대면은 더욱이 작가가 노출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도 전달되는 것이 있다.